[납량특집] 별빛 야행자(夜行者)를 위한 잡설 몇 가지
맑고 깨끗한 밤하늘을 찾아 장비를 풀고 눈과 사진으로 우주를 즐기는 별지기가 있습니다. 빛이 없고 어두우면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치안이나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게 되는데 다양한 상황에서 어쩌면 참고가 될 수도 있는 몇 가지 잡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본 글은 불필요한 혐오감 조성이나 미신 조장의 의도는 전혀 없는 개인적인 생각과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곳을 찾는 사람은 별지기뿐만이 아닙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고, 통계청의 사망원인 자료를 보면 자택을 포함한 주택을 제외한 ‘기타 명시된 장소’가 15% 내외의 비율을 차지합니다. 전국에서 한 달에 150명 내외의 분들이 ‘XX산 중턱’, ‘XX고개 입구’, ‘XX바닷가 앞’ 등으로 기록되는 ‘기타 명시된 장소’를 삶을 마감하는 곳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공통적으로 해가지면 어둡고 인적이 드물면서 방해받지 않는 장소라는 점에서 별지기의 관측지와 맥을 같이합니다.
201x 년 여름,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바닷가 인근에 가만히 차량 한 대가 들어오며 불이 꺼지는데 어떠한 소리나 미동이 없어 잠시 의아한 마음에 관측을 이어갔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 평소보다 일찍 철수하였는데 꿈자리도 좋지 않아 다음날 그 장소를 다시 찾아보니 해당장소에 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친 일도 있었습니다. 번개탄 연기에 삶의 불이 꺼지는 순간 망자의 눈에 비친 모습이 망원경을 조작하는 저의 뒷모습이었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하였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리고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네요.
최근 여성 관측자나 미성년 자녀와 함께 관측이나 촬영을 다니시는 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는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묵과할 정도로 희귀한 사례가 아니기에 조금이라도 거동이 수상한 사람 또는 캠핑이나 차박이 아닌 어두움을 유지한 상태 그대로 멈춰있는 차량을 보신다면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염두하고 항상 둘 또는 셋 이상 무리 지어 움직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아울러 널리 알려진 사람이 모이는 장소 - 천문대 같은 곳을 위주로 다니시기를 추천합니다. 저의 경우, 포인트라고 알려진 장소 또는 로드뷰로 찾은 특정 장소에 가면 장비를 펼치기 전에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가 가만히 멈춰서는 차량이나 수상한 인기척이 감지되면 미련 없이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자리를 뜨고는 합니다. 취미는 편하게 즐길 수 있을 때 취미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2. 지구밖 우주정거장에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는 시대에도 항상 흥미로운 논란거리 중 하나가 귀신 이야기죠. 요즘 유행하는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을 하셨죠?’ 수준의 가벼운 접근부터 신내림이나 빙의 또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 어렵다는 심신박약자 및 정신질환 사례의 가볍지 않은 주제까지 다양합니다. 밤에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서 뒤돌아보니 뭐가 휙 지나갔다라든지 사람인 줄 알고 대화를 나눴는데 돌아보니 없더라 같은 류의 경험담 또는 설화죠. 귀신으로 몰리는 사람, 밤에 홀로 야행을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대인기피증을 넘어선 분들의 경우 어두운 밤시간마저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고 일체의 조명기구 없이 가장 가까운 민가에서 차로 10분 이상 떨어진 산길을 오르는 분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머리에 붉은 렌턴을 켜고 있는 제가 오히려 귀신인 줄 알았다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예전에는 나병이라고 불리던 한센병 환자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해가 질 무렵 산에서 내려와 간단한 장을 보고 밤에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분들도 계셨다고 들었고, 폐교된 학교에 혼자 걸어가서 수건을 입에 물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신세를 한탄하며 서럽게 울다가 귀신이 출몰한다는 뒤숭숭한 소문이 돌아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일어난 사례도 있습니다. 그들이 남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지나간 자리에 화장품 냄새가 날 수 있고 걸으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요. 간혹 도력이 떨어진 무당이 소복과 간단한 도구(!?)를 지참하고 모시는 신이 좋아할 만한 장소에서 푸닥거리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UFO가 외계인의 우주선이 아니듯 이런 분들은 귀신이 아닙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많이 찾으시는 시골이나 산지에 가보면 흔하게 있는 풀벌레나 귀뚜라미 또는 개구리나 매미 또는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로 알 수 있지요. 뭔가 접근하는 게 느껴질 때 앞서 언급한 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사람이나 개나 고라니 같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접근하는 소리입니다. 귀신이 아니지요. 하지만 들리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어느 순간 들리지 않는다면 이는 신체의 이상신호- 갑작스러운 뇌혈관 질환이나 당뇨가 있으신 분들은 저혈당 쇼크일 수 있으니 이에 대한 긴급조치를 실시하여야 합니다.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지는 산지의 추위나 낯선 환경에서 장비설치 시 긴장반 설렘 반으로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사용으로 인한 신체의 이상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기저질환이 있으신 분들은 특히 야외활동 시 조심해야 합니다.
4. 가장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은 잘 들리던 풀벌레나 개구리 또는 매미, 귀뚜라미, 새소리 같은 자연의 BGM이 일순간 멈추고 고요해지는 때입니다.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들리는 건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뿐이라고 하죠. 삿된 것이 눈앞까지 와있다는 이런 신호는 괴기나 공포물의 클리셰로 대표되는 시간이 멈추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때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큰 웃음 및 울음소리와 성별 및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말소리가 들리면 괴롭고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선잠이 들었을 때 겪을 수 있는 ‘수면마비’ 이른바 '가위눌림'이라는 현상과 매우 비슷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야외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면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누워있는 경우와 달리 넘어지거나 주저앉을 경우 크게 다칠 수 있고, 남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면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보게 될 수도 있거든요. 더 이상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영역이기에 이어가지 않겠습니다.
5. 대나무숲에 익충보다 해충이 많고 대낮에도 바람소리에 사람이 홀리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빽빽한 대나무잎에 햇볕이 차단되어 지대가 습하고 대나무에게 영양분이 거의 빨린 부패한 토양을 좋아하는 지네가 다수 서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나무가 좋아 이런 곳에 숙소를 꾸미다 지네에 버티지 못하고 버려진 곳들이 상당하죠. 대체로 습하고 후덥지근하면서 바람 한점 안 통할 만큼 꽉 막히고 주변에 고여 있는 물이 있다면 삿된 것이 접근하기 최상의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피해야 할 방향을 ‘귀문방’으로 정의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 - 이른바 풍수로 대표되는 선조들의 지혜이기도 하죠. 천체관측을 포함한 맑고 상쾌한 야외활동을 위해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장소나 지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낮에는 볕을 온전히 받고 밤에는 풀벌레가 힘차게 울면서 안개나 구름이 고이지 않고 답답하게 막혀 있지 않은 장소가 풍수지리뿐만 아니라 별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장소임을 염두하고 항상 안전과 본인의 몸상태를 최우선으로 감안한 관측지를 선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글을 줄입니다.
더운 여름밤에 조금은 시원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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