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인공조명 가리개 제작기
천체관측이나 천체사진 촬영 시 가장 큰 방해요인 중 하나는 고정된 인공광원입니다. 가로등부터 산불조심 전광판 및 전기차 충전기 디스플레이까지 밤새 내뿜는 조명을 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사유지에 위치한 조명에 간섭할 수 없음은 물론 지자체 및 관공서에서 설치한 옥외 등기구는 비록 야간에 통행인이 1명도 없다고 해도 마음대로 끌 수 없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망원경을 직접 비추는 조명이라도 가려보자는 생각에 가림막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측지 특성상 현수막처럼 나무나 전봇대 사이에 묶을 수 없고 캠핑족처럼 별도의 바람막이를 설치하기 곤란한 장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동차 상부에 올려놓는 구조가 좋겠다 싶어 ‘자석 부착식 가림막’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대형 문구점을 들러 지지대로 사용할 물건을 찾다가 한쪽 구석에 걸려있는 지휘봉을 발견하여 구입하였습니다. 적당한 자석을 구해야 하는데 문구점에서 취급하는 사무용 자석의 자력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메모걸이 수준이기 때문에 일단 지휘봉만 2개 구입하고 문구점을 나왔습니다.
자석을 구하기 위해 남자들이라면 한두 개쯤은 갖고 있는 잡동사니 상자를 뒤져보니 폐기하려고 모아놓은 하드디스크가 보입니다. 양질의 네오디움(ND) 자석이 들어있어 이를 사용하고자 분해하였죠. 둥근 원판의 플래터가 500G에는 1장, 1TB에는 2장이 들어있는 구조인데 2장이 들어있는 1TB HDD에 들어있는 네오디움 자석이 1장짜리 대비 훨씬 크고 강력합니다. Torx : T8 드라이버와 공구를 사용해서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분해합니다.
순간접착제와 탈지면 그리고 베이킹 소다를 사용해서 네오디움 자석과 지휘봉을 결합하였습니다. 베이킹소다나 순간접착제는 생활용품으로 대부분 가지고 있고 반사망원경 운영자라면 탈지면 역시 마찬가지죠. 순간접착제를 머금은 탈지면에 베이킹소다를 뿌리듯 도포하면 빠른 경화를 촉진하여 뜨거워지기 때문에 조심해서 작업해야 합니다. 처음 시도하는 분의 경우 당황하기 딱 좋을 만큼 뜨거워지죠. 열기가 잦아들 무렵 탈지면을 만지면 조개껍질처럼 딱딱하게 경화되기 때문에 손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다듬어줘야 합니다. 한 번에 올바로 붙여주기 위해 미리 지휘봉과 자석면을 적당히 사포로 문질러 요철을 만들어주는 사전작업도 해주었습니다.
빛가림막은 안 쓰고 처박혀 있던 자동차용 햇볕가리개의 큐방과 돌출부를 제거하고 지휘봉에 청테이프로 대충 붙여줍니다. 끝부분은 강한 자석의 마찰로 인한 파손 및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뽁뽁이 비닐주머니에 넣은 후 헤어밴드로 감아주었지요. 이렇게 하면 소형 천막처럼 돌돌 말아 가지고 다닐 수 있죠.
자동차 상부 철판에 네오디움 자석을 부착하면 강한 자력에 의해 도장면에 작지 않은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한 분이라면 보호필름이나 기타 용품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흠집이나 찍힘 정도는 자동차 운행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저는 전 차주가 시공한, 갈라져가는 래핑지에 의지하여 자석을 붙였지요. 앞뒤 표시를 해서 차량상부의 굴곡에 맞게 나무 지휘봉과 자석 접착면 각도를 감안해서 밀착성을 확보해야 쓰러지지 않고 잘 붙어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의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시점에는 거의 항상 돌풍이 불기 때문에 네오디움 자석으로도 접합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를 대비하여 장비케이스 및 망원경용 소프트 케이스를 앞뒤로 적당히 배치하면 웬만한 바람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더군요. 차량의 천정 길이에 맞게 햇볕가리개나 적당한 천 또는 비닐류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해가지고 조명이 켜지면 차를 적당히 움직여서 망원경에 직접 빛이 닿지 않도록 가리면 아침까지 잡광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이면 황사 또는 미세먼지와 봄비 및 장마로 이어지는 계절의 특성상 별볼일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지난 몇 달간 관측지에서 접하고 느낀 다양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시기로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다가오는 장마철을 대비해서 망원경 케이스나 장비 가방에 들어있는 실리카겔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말리는 것도 여름을 대비하는 훌륭한 천문활동이죠. ‘남보다 망원경 구경이 작아서, 옆에 있는 팀원보다 카메라 사양이 떨어져서’ 원하는 관측대상이나 촬영대상에 만족하지 못해 큰돈을 들여 장비를 바꾸는 것도 (제가 하고 싶은..) 즐거운 일이지만, 최소한의 투자로 관측지의 쾌적하고 원활한 여건조성을 가능하게 하는 탐구와 실천은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지고 의미 있는 천문활동일 것입니다.
즐거운 밤하늘 관측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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