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심원천체 사진 50주년 이야기(feat. 소백산 천문대)
'심원천체'(Deep sky object, DSO)는 말 그대로 깊은 우주에 속한 천체를 뜻합니다. 지구를 공전하는 달과 태양을 공전하는 화성이나 토성 같은 행성은 눈썹에 붙은 먼지처럼 관측에 방해되는 성가신 존재로 여겨질 만큼 거리나 크기면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는 천체를 일컫는 말이죠.

해나 달 또는 행성을 촬영한 사진은 사진술의 발명과 거의 동시대에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겨우 보일만큼 어두운 심원천체는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죠. 최초의 딥스카이 천체사진 촬영은 미국의 의사이자 아마추어 천문가인 '핸리 드레이퍼'(Henry Draper)가 1880년에 촬영한 '오리온 대성운' 사진이었습니다. 이후 20세기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심우주 연구와 더불어 천체사진의 급속한 질적 향상이 가능했죠.

한국의 경우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위정자의 쇄국정책과 곧이어 찾아온 일제강점기를 맞아 조선말까지 이어오던 '관상감'(觀象監)이 폐쇄되면서 천체관측과는 인연이 끊기고 오로지 먹고사는 것이 일 순위인 세계 최빈국(最貧國)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선진국의 해외원조를 받아 근대화에 한창이던 196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립천문대 설립이 논의되기 시작했죠. (국립천문대 설립 5개년 계획)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시대인만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천문대 건립과 망원경 수입이 추진되었습니다.

국립 천문 관측소 건립이 가시화되자 전국의 명소를 대상으로 입지를 알아보던 당시 한국의 물리학 및 천문학 석학들이 제안한 장소는 소백산 비로봉(1,439m) 이였습니다. 하지만 자문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천문학자의 생각은 달랐죠. '소백산 비로봉은 절경이 빼어나 천문대를 건설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이유였습니다. 한국인 석학들이 깔아뭉개려 한 자국(自國)의 절경(絶景)을 일본인 천문학자에 의해 지킬 수 있었던 순간입니다. 결국 천문대 설립 장소는 동경천문대 '이시다 고로'(Ishida Goro) 부소장이 제안한 소백산 제2 연화봉(1,390m)으로 결정되었죠. 1972년 당시, 개발과 보전에 대한 한국과 일본학자의 인식차이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1972년 12월, 61cm(24인치) RC(Ritchey–Chrétien) 망원경 구입계약을 체결하여 1973년 11월, 인천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돔을 포함한 관측소 공사지연으로 꼬박 1년 후인 1974년 11월, 천체망원경을 설치할 수 있었죠. 대한민국에 처음 들어오는 신문물인 천체망원경 운영 노하우 부족으로 극축정렬 및 TCS(망원경 제어 장치) 안정화에 추가로 1년을 보낸 1975년 12월 27일 자정 무렵, 인천항에 망원경이 들어온 지 2년 하고 1달이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First Light'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코닥의 4"x5"(10.2 cmx12.7 cm) 103aO 유리건판을 장착하고 30분간 노출을 주어 촬영한 대한민국 최초의 딥스카이 사진인 '오리온 대성운'입니다.

사진의 별상을 보면 극축정렬(Polar alignment) 또는 추적(Tracking)이 올바로 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20년대 기준 30~50만 원 내외로 구입가능한 보급형 망원경인 Celestron 90GT나 BCTO 90으로 촬영한 사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천문대급 천체망원경 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말 그대로 '0'인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낸 천문대 관계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해야 할 역사적인 순간이지요. 국립 소백산 천문대의 First Light 사진은 1976년 1월 1일, 주요 일간지에 소개되어 과학기술 대한민국으로 가는 상징으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2025년 12월 27일은 소백산 천문대의 61cm(24인치) 망원경이 오리온 대성운을 촬영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75년과 2025년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1인당 명목 GDP가 617달러(1975년)였던 나라와 4만 달러(2025년 추정)인 나라를 비교하는 건 학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경제 및 사회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뤄낸 눈부신 발전속도만큼 천체사진의 양적, 질적 향상도 엄청나지만 항상 시작했던 첫 한걸음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 소개글을 남겨봅니다. 다가올 겨울에 오리온 대성운을 눈과 사진으로 담으며 50년 전, 혹독한 시절에 과학기술 강국을 꿈꾸며 애쓴 분들의 노고(勞苦)를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Night Sky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상] 2024년에 담아본 천체사진 모음 (0) | 2024.12.29 |
|---|---|
| 33회 아마추어 천문인의 밤, 별잔치 : 2024 Star Party Korea (1) | 2024.10.14 |
| 개정 주차장법 시행에 대하여 (feat. 과태료 30만원) (1) | 2024.10.03 |
| 남도 '무진장' 관측지 탐방기 (3) | 2024.08.07 |
| 어느 별지기의 단상(斷想) (1) | 2024.04.12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영상] 2024년에 담아본 천체사진 모음
[영상] 2024년에 담아본 천체사진 모음
2024.12.29 -
33회 아마추어 천문인의 밤, 별잔치 : 2024 Star Party Korea
33회 아마추어 천문인의 밤, 별잔치 : 2024 Star Party Korea
2024.10.14 -
개정 주차장법 시행에 대하여 (feat. 과태료 30만원)
개정 주차장법 시행에 대하여 (feat. 과태료 30만원)
2024.10.03 -
남도 '무진장' 관측지 탐방기
남도 '무진장' 관측지 탐방기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