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보기 첫걸음 - 5. 밤하늘 관측지 이야기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오후 시간, 망원경이나 카메라를 챙겨 시야가 트인 야외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캠핑을 하며 아이들에게 달을 보여주고 싶은 가장도 있고 학생들에게 교실 밖 심우주를 선사하고픈 훌륭한 선생님도 계시며 아무도 없는 나만의 장소에서 깊은 우주의 심연을 느끼고 싶은 아마추어 천문인과 찬란한 은하수를 담고 싶은 사진가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어두운 밤하늘을 찾고 있습니다.
다른 야외 취미활동과 달리 아마추어 천체(사진)관측은 많은 제한사항을 갖습니다. 비나 눈이 오거나 구름이 하늘을 덮은 날은 아예 불가하고 구름이 걷히지 않은 달빛에는 그 활동이 크게 제한됩니다. 삼원 천체라 불리는 성운, 성단 및 은하를 올바로 보거나 담기 위해서는 어떠한 인공광원도 배제된 - 가로등 조차 없는 외진 지역을 찾아야 비로소 장비를 풀 수 있습니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국토의 특성상 밤하늘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대단히 제한적 입니다. 도심권을 벗어나 인기척이 드문지 역으로의 이동성 확보가 절실하여 이른바 ‘자동차’가 필수 관측장비인 이유입니다. 인구 절반이 뭉쳐 사는 서울 및 경기도권의 경우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인위적인 불빛을 피해 어두운 곳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죠. 위성사진과 로드뷰를 활용하여 전원주택단지와 산업단지, 도로변 가로등이 없을 듯한 어두운 곳을 찾아보지만, 분단국가의 비극으로 개발의 손길을 피한 - 밤에 유난히 어두운 지역은 군사 관련 출입통제구역인 곳이 태반입니다. 철책을 만나거나 군 작전지역 혹은 사유지로 출입이 통제된 곳이 상당수지요. 국도변 길가의 작은 공터나 비포장 길도 빛이 없다면 감지덕지하며 감수해야 할 정도입니다. 가로등이 없다는 말은 대부분 공중화장실이나 상하수도 시설과도 인연이 없다는 뜻과 더불어 일종의 치안 사각지대의 의미도 되기 때문에 많은 불편과 돌발상황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성 관측자가 드물 수밖에 없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두운 밤하늘을 찾는 사람은 더 이상 천체관측자 뿐만이 아닙니다. 2000년대 이후 주말 레저의 활성화와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가족끼리 따뜻한 모닥불과 환한 조명 아래 밤하늘을 즐기고 싶은 캠핑족과 은하수를 배경으로 장노출 사진을 담아보고 싶은 사진가의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밤하늘 관측자들이 망원경을 펼치던 자리에 캠핑카나 견인식 트레일러, 심지어는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고휘도 조명을 걸고 갖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순번을 정해 셔터를 누릅니다. 떼 지어 다니는 메뚜기가 지나간 곳은 쌀 한 톨 남지 않는 것처럼 이들이 지나간 곳은 더 이상 망원경을 설치할 수 없고 설치해서도 안 되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검색해서 찾은 관측지라고 해서 가봤더니 사람이 북적인다거나 (사진가들이 휩쓸고 지나간)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더라 하는 곳이 대부분 이런 곳입니다. 망원경 설치와 정렬 작업, 사진의 경우 포커싱 및 구도 선정까지 길게는 두 시간 이상 소요되는 세팅을 마치고 촬영을 게시하려는 순간 우르르 몰려든 사진사들이 렌턴을 고 망원경을 비추며 몰려든다면 누구도 찾지 않고 찾아서도 안된다는 소문이 도는 이른바 죽은 관측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진인이 찾지 않더라도 사람이 모이고 입소문이 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각기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 다른 목적(안시,사진,장비테스트 등)으로 만나는 만큼 크고 작은 마찰을 종종 보거나 듣고는 하는데 사례를 들면 늦게 도착해서 자동차 라이트를 길게 드리우며 접근하는 사람, 스피커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밤새 틀어놓는 사람, 줄담배를 태우며 아무 곳이나 재를 털고 꽁초를 버리는 사람, 연신 여기저기 밤새 전화하며 모두와 통화내용을 공유하는 사람, 전원용 발전기 가동 시 잘못된 위치 선정으로 매연과 소음을 밤 새 선사해주는 사람 등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상황이 있습니다. 의외로 오랜 시간 같이 활동했던 천문인들 사이에도 이런 갈등이 제법 있어 과거 접한 기억이 있는 특정인이 간다고 하면 자기는 결코 가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거부감을 분명히 드러내는 분도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관측지 이름이나 주소가 공개되어 사람이 몰리게 되면서 질서가 없어지고 전에 없던 오염(쓰레기 및 담배꽁초) 및 소음, 심야시간 차량통행 및 가로등 임의소등 같은 불협화음으로 인한 지역주민과의 갈등 발생 및 연이은 사진동호인의 출현으로 인해 관측이 불가능한 루틴이 형성되면서 관측지 이름과 주소 및 지도 등의 온라인 공개 행동은 터부시 되어 왔습니다.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몇몇 지인을 통해서 알음알음 관측지를 공유하게 되었고 온라인에서 모임 글을 작성할 때에는 별칭이나 약어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기르는 개의 이름을 쓰거나 지명을 숫자로 변환하거나 하는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른바 진입장벽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접하는 신입회원이 관측지에 도달하려면 공개관측회나 몇몇 알려진 오프모임에 참석해서 친분을 쌓아야만 알 수 있는 - 입소문을 통해서만 가능한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만이 알 수 있는 폐쇄성이 좋지않다거나 몇 안 되는 관측지를 공개하는 당신이 신중하지 못했다 같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히 보존 가능한 고립된 지역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모든 방문자들에게 이런 방법을 주지 시킨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사진동호인과 천문동호인 모두를 한 장소에서 만족시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마주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는 게 좋을 듯하여 분야를 한정해서 천문동호인 - 그중 처음 밤하늘을 접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경험으로 느낀 몇 가지를 감히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 많지 않은 경험의 초보(!?) 입장이어서 매우 조심스럽기 그지없지만 큰 틀에서 대체로 공감해주시리라 믿고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공공장소 - 특히 산림지대에서 금연,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기(다녀간 흔적 남기지 않기), 타인의 시선을 끄는 인위적인 돌발행동(소음 및 소란) 하지 않기 등은 설명이 불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아래 제안사항은 기본사항에 덧붙이는 천체관측을 위해 모이는 사람끼리의 예의와 배려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1. 관측지 도착과 이탈 시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한창 깊어지는 밤, 대기가 서서히 안정을 찾을 무렵 길게 드리우는 자동차의 전조등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득이하게 늦게 도착할 경우에도 안전에 유의하여 최소한의 조명으로 접근하고 전조등 위치를 관측지 반대편으로 향하게 주차한 후 기존에 계신 분들에게 건네는 양해의 말 한마디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 자리를 떠야 할 경우라면 최대한 관측지 바깥지역에 주차하는 센스가 필요하겠네요. 이런 배려를 위해서는 반드시 낮시간대에 위치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개인적인 바람은 아무리 늦더라도 천문박명 시간 내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다니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2. 관측지의 조명은 저 확산 적색 등이 기본입니다.
암 적응을 그나마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 적색 등이 밤하늘 관측 시의 기본사항입니다. 공개관측회나 과학캠프 같은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이상 꼭 지켜져야 할 사항입니다. 초록색 그린 레이저 류의 별 지시기는 사용을 자제하여야 하며 꼭 필요할 시 기존 관측자분들의 양해를 얻고 사용하여야 매너 있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자동차 보조등 및 실내등 상시점등이나 일반 조명기구 및 휴대전화 플래시는 사용을 지양해야 할 품목입니다.
3. 관측지에서는 주의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야간에 이루어지는 활동의 특성상 안전에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특히 미성년 자녀나 학생을 동반한 보호자의 경우 각별한 주의와 감독이 필요합니다. 천체관측 대회를 준비한다는 어느 학교의 경우 학생이 망원경 사이로 질주하며 뛰어다니는데 교사가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망원경 진동 방지나 타인에 대한 배려 이전에 삼각대나 관측도구에 걸려 넘어져서 다칠 경우 인솔자인 교사 본인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닌 장비의 전원 케이블이나 노트북을 건드려 USB 연결이 차단되어 장비 세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경우 다른 의미로 잊지 못할 감정을 쌓을 수도 있고, 실수로라도 타인의 장비에 금전적 손실을 입힌다면 서로에게 괴롭고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4. 암적을을 깨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여야 합니다.
암 적응을 유지해야 하는 안시관측자에게 사진관측자의 노트북 불빛은 큰 방해요인 입니다. 옷가지를 담을 수 있는 1~2만원대의 조립식 리빙박스에 밝기를 최소로 유지한 노트북을 넣으면 무작위로 확산되는 빛과 내리는 이슬을 차단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 입니다. 이동하며 볼 수 있는 휴대전화 성도가 편하고 좋지만 적색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휴대폰 최대밝기는 암적응을 순식간에 파괴하는 지뢰와 같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배터리 및 전원장치나 카메라 LCD 모니터 및 USB 전원 표시부를 마스킹 테이프나 빨간 셀로판지로 가려준다면 밤하늘의 별처럼 넘치는 센스를 뽐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몇 안 되는 관측지에서 스트레스 없이 취미활동을 즐기기 위해 서로를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을 저부터 다시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줄입니다. 맑은 밤하늘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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