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하늘 이야기
밤하늘의 무수한 별빛이 영겁의 시간을 지나 지구에 서식하는 관측자의 눈에 도달하려면 충분히 어두운 환경이 필요합니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좋지요. 20세기 말 무렵만 해도 수도권과 광역시 이외의 지역은 도시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안쪽의 시간만 이동하면 은하수를 관측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는 해수면을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의 적당한 언덕에 오르면 황도광과 은하수 정도는 쉽게 볼 수 있었다고들 하시더군요. 대신 아이피스가 없어서 쌍안경을 부수고 십자선 조명이 없어 꼬마전구에 빨간 매직을 칠하여 사용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Sky & Telescope 잡지의 2001년 2월 기사를 보면 Bortle 등급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2001년 John Bortle이 제안한 이 등급은 영화제목 같은 엑설런트 다크 스카이의 1등급부터 9등급의 시내 한복판에서 바라본 하늘까지 아홉 등급으로 분류하였습니다.
Light Pollution and Astronomy: How Dark Are Your Night Skies?
Excellent? Typical? Urban? Use this 9 step scale to rate the sky conditions at any site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light pollution and astronomy.
www.skyandtelescope.com
80년대 후반 으로 기억합니다. 충북 보은의 어느 시골마을, 오후에 놀러 간 산속 아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산길을 외할머니 손을 잡고 내려오던 그곳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았던 가장 어두운 하늘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주황색 가로등이 족히 1.5km 밖에 있었는데 그 빛으로 산길을 내려오는 게 충분히 가능할 정도였지요. 밤하늘의 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천체관측에 대하여 전혀 숙련되지 않았던 국민학교 저학년의 눈으로도 별 사이로 뭉쳐 있는 모습과 뿌연 기운도 잘 보였습니다. 20여분을 내려와서 콘크리트 포장된 도로를 지나 가로등까지 삽십 여 분동 안 제가 본 하늘은 Bortle 2~3 Class의 하늘이었습니다.
Bortle 등급에서 이야기하는 Class 1 의 하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은하수- 궁수자리 영역의 밝기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하늘이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어두움인 듯합니다. 3등급의 하늘도 어렴풋한 기억 속에 있어서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M33 나선은하가 아직 충분히 밝아 맨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조건이 이들이 말하는 4등급 하늘입니다. 하늘이 너무 어두워 지상의 빛을 받지 못해 구름이 단지 어두운 구멍으로 보일 뿐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이런 하늘이 한국에 있을지 자체가 의문입니다. 적색 등조차 켜지 않고 1시간 이상의 암적 응이 끝난 진정한 1등급의 하늘에서는 앞으로 나란히 팔을 올려서 손가락을 폈을 때 손가락 개수가 보이지 않고 은하수 그림자로 망원경과 자동차의 위치를 가늠할 정도라고 하니 살아생전에 이런 하늘을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밤하늘에 구름이 있을 경우 구름의 형상이 식별되는 하늘이 4등급 입니다. 2019년 현재 한국의 아마추어 천체관측가 들이 갈망하는 이른바 최상의 어두운 하늘이 이 정도 하늘입니다. 대부분 접근성이 좋지 않은 산맥의 고지대에 위치하지요. 강원도 몇몇 포인트나 지리산 및 속리산 주변 같은 국립공원의 조명을 피한 지역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최상의 조건하에 황도광 관측이 부분적으로나마 가능한 하늘입니다. 매우 좋은 하늘이지만 팔을 뻗어 손가락을 보았을 때 몇 개인지 육안으로 어렵지 않게 식별 가능하고 손바닥과 손등의 명암이 충분히 구분됩니다. 행성의 존재가 방해가 되어 오히려 집중적인 관측을 방해하는 마지노선의 하늘이 4등급의 하늘입니다.
펼쳐진 테이블에 올려진 물체가 아이피스인지 바로우인지 혹은 손전등인지 가까이 보면 인식이 가능하며 은하수의 흔적은 천정 인근에서 확인되고 지평선 부근은 빛오염으로 인한 회색조가 분명히 보인다면 5~6등급의 밤하늘입니다. 수도권 및 충남 서해안 해안선 반경 30km 이내 지역의 일 년에 3~4일 정도 아주 좋은 하늘이 이 정도 등급 같습니다. 뉴스에 ‘오늘 가시거리가 20km를 넘는 쾌청한 날씨’라는 멘트가 들린다면 도전해 볼만한 조건입니다. 자동차 번호판과 신문의 헤드라인은 조명의 도움 없이 읽을 수 있는 - 대부분의 아마추어 관측자들이 달 없는 밤에 관측과 촬영을 위해 모이는 곳의 최상의 조건이 이 정도라고 보셔도 무방할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대구경 망원경으로 8등급보다 어두운 은하를 올바로 관측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하늘이라고 생각합니다.
7등급의 경우 적색등 없이도 적도의와 망원경의 조임부가 쉽게 확인되고 테이블에 놓여있는 나사가 둥근 머리인지 육각 머리인지 확인 가능한 조건입니다. 망원경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시력으로 대부분의 서적이나 신문의 전체 지면을 읽을 수 있고 자동차 열쇠 구멍에 키를 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면 가로등과 인공조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대부분의 조건이 이런 곳입니다. 메시에 목록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상은 10인치 이상의 망원경으로 (주변시로) 겨우 존재만 확인 가능할 뿐인 경우가 대부분인 하늘입니다. 안타깝게도 과거 맑은 날 6등급은 되었던 장소가 현재는 7등급이 된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나 라는 고민을 품게 합니다.
8등급의 하늘을 좋게 이야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른바 계절별 별자리 요점정리판 이지요. 여름철에는 오직 대삼각형의 세 꼭짓점만 볼 수 있고 겨울철에는 오리온자리의 장구모양 만을 확인할 수 있는 하늘입니다. 쓰레기 버리러 내려온 도심 아파트 한복판에서 바라본 하늘이죠. 9등급은 넘쳐나는 인공조명으로 하늘을 거의 볼 수 없는 조건입니다.
문명을 거꾸로 하거나 전 지구범위의 재난이 있지 않는 이상 과거의 온전한 밤하늘을 맞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인공조명 사용에 대한 문제 인식과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뒤따른다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늦출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소음공해와 더불어 빛공해를 지적하고 있고 주거지에 한하여 조례 및 적절한 환경입법 등으로 규제가 논의되고 있고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지자체의 영리 목적에 따른 개발 및 광범위한 빛 오염과 사유재산권 문제로 개인 및 법인의 활동을 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사회적 인식개선을 통한 빛공해의 올바른 이해와 이를 기반으로 한 개선활동 추진으로 조금씩 나아질 수 있거나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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