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일, 천체 사진관측기
저녁 늦은 퇴근길, 늘 가던 방향과 반대로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탑니다. 좋은 구름 예보와 강하지 않은 바람, 달이 없는 하늘의 조합은 감히 평일 천체 사진 관측을 시도하는 날입니다. 좋은 월령 주간에 혹시나 하고 미리 실어놓은 트렁크 속의 사진 관측장비는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휴게소에서 밤을 견딜 야식을 먹고 관측지 도착전 마지막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를 담습니다. 보통 삼각김밥 두 개와 종이팩 우유, 생수 하나가 기본입니다. 퇴근 전 정수기에서 담아오거나 편의점에서 양해를 구하고 채우는 보온병의 뜨거운 물은 한밤중 몸이 한기를 느낄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관측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순간이 가장 긴장되면서 설레이는 순간입니다. 차 문을 열고 일어서자마자 구름은 없는지, 바람은 얼마나 부는지, 살결을 스치는 습기는 어떤지, 돌풍은 있는지를 느끼며 온습도계를 꺼내 놓습니다. 초저녁 - 보통 20시 전후에 측정기에 나타나는 지금 이 습도가 내일 새벽까지의 최저 습도입니다. 50%대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한 겨울을 제외하면 드문 조건으로 보통 봄에서 가을 사이의 경우 60이나 70 초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76%면 5월 하순을 감안하여도 낮지 않은 수치입니다.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넘어갈때쯤이면 충분히 90%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면 됩니다. 일반적인 저지대 - 해발고도 100m 미만이거나 강이나 개울 인근 지역은 자정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보면 거의 확실합니다.
트렁크를 열고 장비를 꺼냅니다. 삼각대를 펼치고 적도의를 올리고 무게추 올리기전 적도의 고정하고(중요합니다!) 경통과 가이드 장비 및 카메라까지 붙이고 나면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사항은 수평 및 밸런스입니다. 손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물방울 수평계가 원 안에 들어오도록 삼각대 높이를 조정하여 고정한 후 망원경이 오른쪽과 왼쪽 천정을 보고 있을 때에도 손을 떼면 가만히 있을 때까지 수평을 맞춰줍니다. 두 번째는 체결부 확인입니다. 모든 고정나사가 확실하게 조여져 있는지, 연결 케이블 및 적도의 동작시 걸림이 없는지 확인하면 홈포지션 위치에 클램프를 잠그고 잠시 북극성을 기다리는 여유가 생깁니다. 따뜻한 믹스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북극성이 보이기 전 성도어플로 오늘 촬영할 대상을 다시 확인합니다. 고도는 어떤지 남중하는 시각은 몇 시인지 필터는 어느 것을 먼저 넣고 촬영할지 등을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북극성이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두워지기 전 차량 실내등과 블랙박스는 전원을 차단하고 미등도 OFF로 해놓아야 필요 없는 잡광을 막을 수 있습니다.
모든 연결케이블 및 장비를 재확인합니다. 극축 정렬 후에는 어떠한 물리적 접촉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점검이라고 생각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이 끝나면 PoleMaster 극축 정렬, 적도의 시간과 위치 입력 및 얼라인과 동시에 카메라 제어 프로그램인 Backyard EOS로 초점까지 맞춰주면 촬영 준비는 완료됩니다. 선을 줄이고 무선으로 가는 요즘 추세에 맞지 않게 컨트롤러 버튼을 꾹꾹 누르며 진행하는데 컨트롤 키패드를 누르며 찾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무선의 경우 간혹 끊기거나 신호 오류가 발생하기도 해서 아직 일체의 천문장비에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백 번중에 한 번이라도 안된다면 백 번 다 안 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극히 고지식한 마인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결이 끊어지거나 오류 발생 시 즐기자고 하는 취미가 순식간에 짜증 나는 고생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목표로 하는 대상을 도입한 후 Backyard EOS 프로그램으로 20초 컷으로 구도를 확인합니다. 이때 경통과 미리 정렬된 가이드스코프에 물린 가이드 카메라 전원을 PHD로 켭니다. ‘사알짝 오른쪽에, 약간 아래로~!’ 같은 구체적이지 못한 구도 잡기에 가이드 카메라 화면이 큰 도움이 됩니다. 구도가 어느 정도 맞으면 PHD Guiding을 시작한 후 테스트 컷을 촬영해봅니다. ISO 및 노출시간을 다양하게 해서 2~4컷을 찍어보는데 ISO 400에 300초 혹은 ISO 800에 240초 같은 다양한 조합으로 찍어봅니다. 그날 하늘상태를 감안하여 피사체가 가장 잘 표현되는 노출을 골라야 합니다. 빽빽한 구상성단 중심부가 하얗게 번져 보이지 않으려면 노출시간을 줄여야 하고 희미한 베일 성운의 끝자락을 살리고 싶다면 감도를 늘리는 등의 결정을 해야 합니다.
300초씩 30장을 계산하면 150분입니다. 하지만 비행기나 위성의 흐름 및 간혹 몰아치는 돌풍 등으로 흔들려서 사용이 어려운 컷이 발생하고 Dithering 후 안정화 시간 같은 추가소요가 있기에 촬영 시간은 좀 더 길어집니다. Backyard EOS 프로그램의 경우 예상 촬영 종료시간을 표시해 주기 때문에 ‘OK Google!’로 알람을 맞춰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쉬는 도중에라도 가이드 그래프와 FWHM 수치를 보고 가이드가 양호한 지 악화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오선 회전 (Meridian Flip)에 의한 경통과 삼각대 및 카메라의 물리적 접촉 및 가이드 정상 진행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피사체가 남중하기 전, 후로 장비를 보고 적도의 방향을 돌릴지, 계속 진행할지를 결정해야 하죠.
첫 번째 피사체를 300초 30컷까지 채우면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어갑니다. 식어가는 보온병에 믹스커피를 하나 먹을지 말지 고민하다 내려놓고 찍힌 사진을 훑어봅니다. 인공위성이 지나간 사진, 비행기가 지나간 사진이 있습니다.(시그마 클리핑으로 버리지 않고 사용 가능합니다.) 가만히 차량 유리창과 차체를 쓰윽 손으로 만져봅니다. 저지대의 경우 물이 흥건하다 못해 줄줄 흘러야 할 습도지만 해발고도가 높아 결로를 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초저녁부터 간간히 들리던 검은등뻐꾸기와 소쩍새의 소리도 잦아들 무렵 멀리 등 뒤에서 들리는 잎사귀를 밟는 소리는 고라니나 족제비 같습니다. 개는 터벅터벅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삵은 소리를 내지 않더군요. 5월 초 연휴 때 어린 멧돼지와 조우했는데 얌전히 지나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먹을걸 꺼내놓지 않는 한 부모님 모시고 오지는 않을 듯합니다.) 가끔 사람 목소리가 들려 적색 등을 끄고 가만히 소리 나는 방향을 주시하면 직선거리로 1.5 km 이상 떨어진 마을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밤늦게 마당에 나와 통화하는 게 식구들이 들으면 좋지 않은 내용인 것 같기도 합니다. 2년 전에는 라이트도 없이 산길을 올라와 한 시간여 동안 혼자 굿을 하다가 저와 간단한 대화 후 가만히 가방에서 과자 한 봉지를 쥐어주고 유유히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박수무당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정 무렵부터 두 어시간 무렵은 피로와 졸음이 가장 극심한 시간대입니다. 두번째 피사체 탐색이나 같은 대상을 필터를 바꿔 담거나 해야 하는데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초점 재확인입니다. 온도 변화 및 경통과 카메라의 위치 변화에 의한 초점의 미세 움직임이 대부분 있기 때문에 바흐티 노프 마스크를 다시 꺼내어 피사체와 가장 가까운 1~2등급의 별을 찾아 초점을 보정해야 합니다. ‘필터를 바꾸거나 구도가 바뀌면 초점재확인’ 은 거의 공식처럼 달고 있어야 하지만 막상 필드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초점 확인, 피사체 및 구도 확인, 가이드 프로그램 재가동 및 테스트 컷 확인까지 마치면 한 시간 정도는 순간 삭제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아침을 생각해서 본격적인 숙면을 취해야 할 시간입니다. 선선한 기운이 없도록 파카에 침낭을 덮고 눈을 감아봅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약간이라도 찬 기운이 얼굴을 포함한 신체에 접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7월 말 8월 초의 한여름을 제외하면 산지의 밤은 한기를 느끼기 충분하기 때문에 체온 유지에 특히 유념하여야 하며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발열, 오한 등의 신체 이상 증상 발생 시에는 지체하지 말고 즉시 철수해야 합니다.
5월 20일 기준 일출시간은 05시 19분이지만 천문박명 - 즉 하늘의 별이 빛을 잃어가고 배경에 청색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간은 04시 직후면 충분합니다. 아직 어두운 하늘에 가장 먼저 새벽을 알리는 새는 호랑지빠귀입니다. 길고 가냘픈 울음소리는 이제 곧 날이 밝아온다는 신호음입니다. 십 여분 후 온갖 종류의 새가 하나 둘 지저귀면 닫힌 창문으로도 새벽이 밝아옴을 눈을 뜨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얼른 일어나 차문을 힘겹게 열면 새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우곤 합니다. 평일 출사를 나왔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타려면 부지런히 짐을 꾸려야 하지요. 그래야 아침을 챙겨 먹고 회사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짐 챙기기가 끝나고 철수하기 전 휴대전화 전등으로 주변을 한바퀴 휘돌아 낙하물이나 쓰레기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자연과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환경오염 및 훼손에 일조한다면 모순이겠지요.
‘아마추어 천문가 한 명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반대가 있기마련이다.’ 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남들 자는 밤 시간대에 인적이 드물고 낯선 장소로 들어가 밤을 보내는 취미를 환영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뜻이죠. 하지만 시끄럽고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고요하고 적막한 밤에 여름 은하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우주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느낌을 아는 분이라면 기꺼이 더 깊고 더 어두운 장소를 찾아 나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안전과 가족이 우선이기에 야간 및 새벽시간대 차량 운행 시 안전 운전에 각별히 주의하고 가족 구성원의 동의와 격려가 꼭 함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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